연기대상을 다 보고 요원느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요원느를 특별히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학교2, 주유소 습격사건부터 시작해서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마다 요원느
출연했던 걸 보면 어쩌면 내 취향과 요원느의 취향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러 횽들이 말했듯이 요원느 본인이
캐릭터의 임팩트보다는 드라마의 융화력을 중요시하는 건 맞는지, TV 앞에 앉을 때마다 드라마가 재미있었다는 생각은
하지만 요원느가 엄청났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가 떴어도 요원느 개인이 화제가 된 적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요원느에 대한 이미지는 성실한 배우, 무난한 배우, 소박한 배우=스타성을 의식하지 않는 배우=
배우라는 직업을 철저히 자신의 직업으로만 한정시키는 배우였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워낙 언플이 없기에...
사실 인지도가 후덜덜하지는 않았다고 인식한 게 사실이라 고르는 것마다 주연을 꿰차서 신기하기도 했다.
고느님이나 남기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이랄 수 없이, 워낙 정석적으로 연기하는 타입이니 모험을 꺼리는 제작진이
총애할 만한 배우인 것 같다는 생각도 약간. 화제성은 다른 배우로 충당하더라도, 요원느를 기본으로 깔아두고 간다는
느낌이랄까. 최근작만 훑어도 더미 땐 김민정, 달희 땐 이범수, 인정 땐 권상우. 화제의 대상은 늘 요원느가 아닌 동료였다.


제작진들이 후반부 춘추, 유신을 통해 그려내려 했던 발판 여왕에는 아마 요원느의 이러한 역사가 스며들어있지 않나
넘겨 짚어본다. 사실 갤러들은 부정적이었지만 난 요원느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역할이 디딤대라는 인식을 가졌었고 아직도
반쯤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덕만이 완연한 희생과 헌신의 캐릭터가 되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회에선 차라리
발판으로라도 만들어줬으면 얼마나 좋았느냐 절규하기도 했다. 이 미친 현실...


각설하여. 요원느의 희한한 점은 선덕여왕 전에는 그 속에서도 꿋꿋이 중심을 잃지 않고 제 몫을 해냈다는 점이다.
정신력이 강한 건가. 분명 주연인데 조연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건가. 푸른 안개에서의 요원느를 떠올리면 그녀의 양탄자 같은
행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초기의 요원느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운도 실력도 그 또래, 그 시절 신인 가운데서는 독보적이었다.
정말 희한하지 않은가? 인생의 내리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꾸준히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열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 주목을 받은 여배우가 걷는 길이 안개꽃을 닮았다니. 요원느가 어떤 경험으로 인해 그런 연기관을 갖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득이자 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냘픈 생김새처럼 길고 가늘게 가는 안전주의자? 전교 10등 내외, 안정과 융합을 우선시하는
모범생? 그런 인상이었다. 누가 봐도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고 누가 봐도 모자라지 않았다 느끼는 연기를 하는 배우.


그게 요원느 최대의 장점이었지만 동시에 한계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원느는 안착에 성공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되어있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요원느 본인도 캐스팅되었을 때 지고지순한 역할에 질렸다고 말한 걸 보면,
절대 멜로의 공주로 안주할 생각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랬던 나는 요원느가 선덕여왕을 택한 건 드라마 틀 내에선 시망이었지만 이요원이라는 배우 인생을 통틀어 본다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요원느가 이 망작이자 괴작이자 명작까지 되는, 정말 장르를 알 수 없는 사극으로
그 좋던 이미지를 다 까먹었다는 말에도 수긍하지 않는바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요원느는 기타지마 마야만큼이나
흥미롭다. 나는 정말 요원느의 이 드라마틱한 현재 상황을 갖다가 소설로라도 만들고 싶다.


고느님VS요원느VS남기르. 정말 극과 극 중에서도 이 정도로 삼각꼭지의 끝을 그리는 필모그래피는 없을 거라고 본다.
여기에 엄포스가 해당하지 않은 것은 덕만 캐릭에 보였던 일말, 그 개미 콧구멍만한 노력이 과분하게 느껴질 만큼 작가도
감독도 아예 엄포스의 장점을 활용하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기에... 선덕 팀을 제외한 어떤 작가, 어떤 감독을 만나도
엄포스의 차기작은 레알 흥하리라......


고느님은 사실 별 다른 수식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미코로 혜성 같이 등장하여 지금 세대까지 제목을 모를 수 없는 대작을
걸머쥐어 화려한 재능을 꽃 피우고, 그레이스 켈리처럼 은막의 전설로 남는가 했더니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그것도 굉장히 귀족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겪으며 귀환한. 정말 여제의 귀환이 이럴까 싶었던 고느님의 깊이는 이미 완성작,
그 중에서도 걸작이 아니겠는가. 연기력을 배제하고서라도 인생의 굴곡조차도 세기를 아우르는 배우 아니면 누가 가지리, 라는 포스를 풍기는......


억측이지만, 고느님만 보면 요원느를 선택한 게 납득이 가기도 한다. 고느님은 막강하다. 이쯤에서 뜬금 없는 하지원느
개드립 좀 해보려 한다. 만약 지원느였다면 브라운관이 레알 무슨 스타워즈 골드스크린처럼 화려하긴 했겠지만, 캐스팅을
들춰본다면 글쎄. 연기로 정평 난 엄포스, 초린으로 사극에서의 입지를 굳힌 예진느, 진가를 발휘한 남기르, 최고의 기대주 슿,
외에도 수많은 별들이 포진한 상태에서 지원느까지?


지원느는 훌륭하지만, 지원느가 선덕여왕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감히 추측해보건대 이 드라마는 캐릭터의
융화보다는 분산 내지는 비산을 보여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감독과 작가가 요원느에게 했던 것처럼
캐릭터를 좆망으로 잡았을 경우이지만.... 그리고 요원느의 연기가 감독과 작가로 하여금 덕만을 시망되게
했다는 사실에 전적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물론 요원느가 지원느에 비해 못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력 자체가 다르니 말이다. 지원느는 기본이 다져진
상태에서 지붕 꼭대기에 세워두고 싶은 타입이다. 고느님과 겹친다. 게다가 이 솟대 역할은 고느님이 선덕여왕에서
업그레이드도 아닌, 레전드로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요원느는 아까도 주야장천 말했듯이, 기본으로 깔아두고 싶은 배우다.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역이랄까.
어쩌면 제작진이 요원느에게 바랐던 것은 고느님으로 솟구친 드라마의 화제성을 단단히 받쳐줄 안정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느님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그 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며 더해서 위축되지도 않는. 딱 그 동안의 요원느
보여줬던 모습이다. 불꽃같은 사랑은 고느님에게, 태산 같은 신뢰는 요원느에게 주려는 어떤 술수가 보였다. 정말 초기에는.
어, 초기에만. 정작 요원느 본인은 그 모습에서 탈피하고 싶어 이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았나 예상을 해보긴 한다만......


자꾸 얘기가 빗나가는데.


남기르는 다 아시다시피 때가 왔다, 나설 때가 되었다, 이런 느낌으로 나타났다. 정말 잠룡이었다. 공채 출신이라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 그래프 선이 비담을 기점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그 정점 위에 또 얼마나 높은 정점이 있을지 모르는 그런.
명민좌 그래프와 비스무레한 스멜이 나는 쫀득함. 정말 인생역전을 이룬 드라마 주인공 같다고나 할까.


이 온갖 멀티소스를 제공하는 드라마틱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 중에서 왜 하필 요원느가 소설의 주인공이어야 하느냐.
요원느가 정말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연기논란을 겪었던 적 없던 배우가 연기논란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고느님, 남기르. 이 두 사람만으로도 요원느는 환골탈태할 준비가 끝나지 않았나. 참 비유하면 뭣하지만 관계만 따지고
요원느를 천재 아닌 기타지마 마야라고 상정했을 때, 고느님은 훨씬 무자비한 츠기카게 선생님, 남기르는 환경의 후광이 없는
히메가와 아유미가 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불친절한 드라마였다. 불친절한 대본, 불친절한 연출.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이 친절했고 그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시청자들은 배우들에게 환호했고 작가와 감독에게는 돌을 던졌다. 당연히 그들은 맞을 만했다. 웬만하면
그 다양하고 신선한 캐릭터들을 창조했다는 점을 봐서라도 쉴드를 쳐주고 싶지만 캐릭터와 스토리의 활용도를 떠올리면 복장이 터져서......


그렇다면 열심히 달렸던 배우 요원느는 왜 뭇매를 맞아야 했는가. 요원느의 저력이 친절한 대본과 연출에서 발휘되어
왔다는 것이 아마 연기논란의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시작할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다는 요원느. 작품 고르는 안목이
상당한 요원느가 작가와 감독을 대단히 신뢰했다는 뜻일 것이다.


고느님 캐스팅이 먼저 결정된 상태에서 언론도 요원느보다는 고느님을 집중했고, 전작들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던
고느님을 상대하기엔. 글쎄. 작품은 많으나 스펙트럼이 적었던 요원느가 역부족이 되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던져왔다.


세간의 인식을 요원느 본인이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그녀는 고느님을 등 뒤에 두고 웃는 포스터를 찍었다.
그 때, 나를 비롯한 일부의 사람들은 요원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왜? 태사기 기하와 수지니의 물망에 올랐던 탑급 여배우들이
지레 겁먹고 물타기와 맛보기와 기싸움을 하다 나가 떨어졌던 데 비해, 요원느는 감수하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요원느가 그 여배우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세상 누가 긴장 타지 않을 수 있으랴.
뒤에 고느님이 있다니. 아마 굉장히 무서운 경험일 것이다.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신세.


그리고 명불허전 고느님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봄날, 히트를 봐도 고느님의 포텐은 확실히 미실에서 터졌다.
누구나 매료시키는 미실의 매력을 요원느는 부정하지 않고, 배우는 자세로 임했다고 말했다. 참 혹독한 배움이다.
가르침을 얻기 위해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광경을 손 놓고 지켜봐야 했으니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덕만의 잔인한 멘토가 미실이었듯이 요원느의 멘토가 양보 없는 고느님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성기님의 부드러움을 본받기라도 한 것처럼 안정적이고 순탄했던 요원느에게 이 같은 위기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요원느가 선덕여왕을 통해 진정 탈피를 원했다면 고느님의 패도 같은 연기는 늦건 빠르건 접해야
했다고 믿는다. 고느님의 연기엔 그만큼 자비가 없고 양보가 없었다. 그야말로 독주이자 독식. 요원느의 연기와는 한 부분도 겹치지 않는.


사실 천추태후의 채시라와 신애, 혹은 덕만과 천명처럼 고느님+요원느였다면 그들이 윈윈했듯이 요원느에게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미더덕의 시너지는 공생에서 비롯된다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기에. 하지만 구도는 고느님vs요원느였을
뿐이고...... 비록 옥처럼 찬란하게 깨지진 못하더라도, 깨져본 적 없는 요원느에겐 깨지는 것 자체가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원느가 그저 그런 배우였다면 분명 그만두자고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때려치웠을 것이다. 작업환경부터 대우, 세간의 인식까지
모든 게 요원느에게는 독 같기만 했을 것이다. 근데 놀랍게도 그 가냘픈 요원느가 버텼다. 그 상황에서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다
박수를 받을 만한데, 많은 갤러들이 지적했듯이 요원느는 점점 스펙트럼을 넓혀가기까지 했다. 투박하긴 했으나 그간 보인 바
없었던 잠재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극 내내 미실에 휘둘려 왔긴 하지만, 낭도-공주-왕을 거치는 요원느를 보며 난 어떤
분기점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원느가 남기르처럼 총명한 배우는 아니리라고 생각했던 게, 이 확장되는 속도가 너무 더디고 한 색과 다른 색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남기르가 공작새의 날개처럼 화사하게 펼친다면, 요원느는 봉숭아물들이듯이 은은하게 펼쳤다. 그런데 또 희한하게도,
그 서서한 확장에 설득력이 있었다. 남기르 같이 역동적이고 강하게 박히는 설득력이 아니라... 참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애매하다.
알듯 모를 듯한 분위기랄까. 그 포텐은 안강성에서 터졌고. 사실 이 에피 전에는 요원느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했으나 그 이후부터
덕만 캐릭이 살지 못했던 건 요원느보다는 제작진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다 그려놓은 그림에 먹물을 뿌리는 포맷에 다시금 한숨을.


사람들이 끝내 미실과 비담의 드라마로 선덕여왕을 기억하게 된 것은 연기력뿐만 아니라 꽃과 불같은 그들에 비해,
요원느의 변화가 안개 같았기 때문이란 점도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원느를 내내 짓눌러왔던 고느님이 하차하니 남기르가 몰아쳤다. 실상 원탑이었던 고느님의 공백과 남주 엄포스의 부진
가운데 무게중심은 자연히 남기르에게 옮겨갔고 요원느는 더 힘들고 외로운 싸움에 돌입한다. 엄 포스도 남주로서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배역 자체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고 게다가 연기까지 월등한 그 모자에게 나란히 실질적인 타이틀을
내어줘야 했던 요원느의 박탈감만 할까 싶다. 아무리 성격 좋다는 요원느도 열패감과 무력감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넓어진 스펙트럼 어쩌고는 했어도, 요원느가 불친절한 대본과 열악한 촬영현장과 변화하고 싶다는 향상심과 받쳐주지 않은 현실로
인해 중심을 잃은 건 확실하니 말이다. 온갖 수난이란 수난은 다 겪은 요원느는 나중엔 모든 욕심을 버리고 버티자는 일념 하나로
달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미실은 악역이어서 제작진 가라사대 정의라는-별로 납득은 안 가지만- 덕만을 응원할 수 있었지만 비담은 악역도
아닌지라 비담을 쪼는 덕만은 뭘 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터뷰에서도 나왔듯이 여왕 닥빙
요원느가 나타났다. 덕만이 왕좌의 무게에 짓눌려 웃음이 사라졌듯이 타이틀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웃음이 사라진 요원느.
덕만을 그리 차갑게 소화했던 건, 요원느의 현실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보면 다 죽다 살아남은 요원느에게, 박볼트와 작가들이 어째서 그리도 감사했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요원느더러 안개 같다
했었지. 제작진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극을 이끌어갔던 고느님, 요원느, 남기르 이 셋 중에 요원느만이 제멋대로 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볼트 하는 짓을 가만히 보자면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제 통제 하에 있어야 속이 시원한 성향인 듯하던데 고느님이 박볼트에게
태클 받을 위치는 아니고. 남기르는 너무 커져서 건드리면 시청자가 들고 일어설 것 같고-자살 편집으로 욕 씐나게 처먹던 판-.
게다가 이 둘은 물 만난 고기, 혹은 미실 귀신과 비담 귀신에 빙의된 것처럼 뛰어놀았다. 드라마의 흥성을 바로 이들이 이끌었다.
자기 편집은 망쇠를 뒤집어쓰고.


감독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판에, 최대한 감독과 작가의 뜻에 따라주는 요원느는 얼마나 빛 같은 존재였을까. 물론 이 사인도 잘
맞지 않는다. 덕만 캐릭이 널을 뛴 게 그 증거다. 미실이야 감독, 작가가 합심하여 멋지게 만들자고 작정한 캐릭이고 비담은 애초에
선악이 모호한 만큼 어느 길로 가건 가능성이 열려있는 캐릭이었다. 그와는 달리, 덕만은 어느 쪽으로 편파되지 않고 공명정대의 끝을
달려야 하는 캐릭인데 작가는 마치 이유 있는 악인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처럼 덕만의 정체성을 살해한다. 우직함의 멋을 보여준다면서
엄유신을 그리 그려둔 걸 보면 이 작자들에게 공명정대란 얼마나 무미건조한 요소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도 다를 바 없다. 편집을 보면 감독이 군주로서의 덕만을 살리려고 애는 쓴 것 같다. 근데 이 양반들이 업적도 제대로 못 그리는
주제에 군주=냉혈한이라고 정해두기라도 한 건지 감정씬 죄 잘라먹고 그나마 덕만이 왜 왕이 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다른 등장인물들을 가위질해댔으니.......


참 까는 건지 두둔하는 건지 헷갈리는 글이긴 한데. 지루해져서 급하게 결론을 말하려 한다. 아무리 시망이었어도 난 선덕여왕을
통해 요원느를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나 말고도 많을 텐데. 그런 분들. 이 드라마를 통해 덕만이 아닌 요원느는 사람을 얻은 게
확실하다. 참고로 난 여자다.


하지만 팬을 얻었다는 점 때문에 요원느의 배우 인생에 선덕여왕이 필요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요원느의 연기력에
홀린 게 아니니까. 난 요원느의 정신력에 홀렸다. 같은 또래 배우 중에 이만한 인내력, 이만한 책임감을 가진 여배우? 손꼽힐 것이다.


요원느. 성실하다. 재능도 있다. 평판도 좋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아 신비감도 있다. 예쁘고 주연급이다. 배우로서 부족하지 않은
인생이다. 한편 부족하지 않을 뿐, 충만하진 않아 보인다. 과대평가 되는 면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꼭 이요원이어야 해!
보다는 뭐 이요원도 괜찮지. 라는 평이 많았다.


조연의 연기를 하는 주연이기 때문에. 강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선덕여왕에서 요원느에게 강렬함을 보여주는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나타났다. 고느님과 남기르. 치열한 연기를 하는 사람들.
두 분을 너무 크게 포장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내가 고느님을 요원느의 위에 두고 있는 건 맞지만
남기르는 요원느와 같은 선상에 두고 있다. 남갤에서 남기르를 무대광풍이라 부르는 걸 봤다.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번엔 비담에 묻혔더라도, 요원느가 디딤대의 본좌라는 페이스를 되찾는다면 언제 어디선가 다른 드라마에서 동반
출연했을 때 미친 궁합을 보여주지 않을까 상상한다.


다시 돌아가. 요원느의 배우 인생을 소설로 쓰자면 이 시기는 찬란한 폭죽을 감추고 있는 암울한 발단, 혹은 평탄한 인생 가운데
핵폭풍을 예고하는 위기일 것이다. 참, 힘든 요원느에겐 미안하지만 난 요원느가 차기작에서 정말 굉장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이 글의 의도 자체가 기대다.


드라마 끝난 마당, 한창 축 쳐져 있을 때에 요원느 스스로 나는 덕만에 미스캐스팅이었다 수긍하지 않길 바란다.
요원느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껏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드라마를 겪음으로 인해 한계를 깰 역량을 걸머쥐었다고 본다.
이미 모든 악조건을 다 수용하고 버텨낸 이상 덕만은 요원느 아닌 누구도 케어할 수 없는 캐릭이 되었다.


나도 드라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그건 고느님과 남기르라는 배우에 비한 상대적인 평가일 뿐, 여왕을 담기에
요원느의 그릇이 작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뚜껑이 덜 열렸을 뿐이고 뚜껑이 다 열릴 상황도 아니었다, 뭐 그런 거.


굳이 요원느가 절치부심하지 않는다 해도 이번 드라마에서 워낙 몸부림을 쳤기 때문에 차기작에서는 어떻게든 변화가 있으리라 믿는다.
당연히 발전이다. 발전이 환골탈태 급이길.


사족이긴 한데 사람들은 요원느의 어두운 표정이 최우수상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떠든다.
난 그리 생각하지 않고, 요원느가 아팠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난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요원느를 보고 동방신기 최강창민과 카라 구하라의 리즈 시절이 떠올랐다.
형들 다 우는 가운데서 유일하게 울지 않았던 최강창민과 언니들이 감동에 젖어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중에 혼자 열심히 안무를 추던 구하라.


이들은 왜 상을 받아도 감격하지 않았을까. 그룹에 대한 정이 없어서? 인성이 메말라서?


난 다르게 생각한다. 이 상에 자신은 공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상이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남의 상이라 생각하니 감흥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 당시 그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다르다지만
최강창민은 그룹 내 가장 인기가 없다 못해 다른 멤버의 팬들에 의해 수난을 당하는 멤버였고 구하라는 막 새로 영입된 멤버였다.


한 팀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 하지만 구색을 맞추기엔 필요한 존재. 남들이 그리 생각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리 생각한다.
알아줄 대중들이 아니니 상처받았다는 티도 내지 못한다. 모두 제 탓이다. 제가 못났고 제가 못한 탓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책망한다.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울지 않는 요원느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아마 요원느는 고느님의 불참으로 대상을 받게 되더라도 똑같은 표정,
똑같은 어투로 시상대에 올랐을 것이라고. 상이란 잘해서 주는 것인데, 요원느 입장에서 정말 엄포스 말대로 고생해서 준 상,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지 않나 싶다. 백 명의 칭찬보단 한 명의 비난이 더 사무치는 게 사람이다. 요원느 인생에 이러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상하좌우대각선으로까지 몰아쳐대는 입놀음에 요원느의 자존감이 얼마나 끌어내려졌을지 상상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기대하는 이유도, 요원느가 너무 실의에 빠져서 다음 작품 안 하면 어떡해, 라는 반동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요원느는 일어날 거야 괴물이 되어 돌아올 거야 뭐 이런 거.


게다가 공동수상자가 엠병신 상반기 최대 공로자 김남주 님이고 현정VS남주VS요원이라는 대상후보 삼각구도 중에서도,
요원느는 어느 정도 배제당한 감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대상 후보 영상에 꼴찌 드립을 넣어놨다는 것 자체가......


탈피라는 푸르디푸른 꿈을 꾸었던 요원느에게 최우수상이라는 허울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출처:선갤/망상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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